*(삼톡기준) 아직 원작에 나오지 않은 인물이 (인물간 대화를 통한 간접적인 언급, 간결한 행동지문)을 통해 등장합니다.
*유혈묘사가 있습니다
*자환이 일으킨 일은 그의 행적을 분석함을 통해( (조비와 조식)두 사람간 후계자 경쟁 암투가 있었으며 후계자 자리를 공고히 굳히기 위하여 조비는 솔선수범해 위왕을 돕는데에 힘썼다) 행적 기반으로 이야기를 꾸며내어 각색한 것이며 실제 사건과 하등 관련이 없습니다.
*드림주의 독백속 드러나는 사상에 필자는 동의하지 않으며 드림주가 단서의 실마리를 잡아내기 위해 저지른 행동이 옳은 일이라 생각지 않으며 동조하지 않습니다.
나는 버드나무를 보면 심회에 잠기네요. 거꾸로 심어도 움이 트고 뿌리를 내려 자라는 나무지요. 정토가 좋은 환경에서는 말할 것이 없겠지요. 버드나무는 유습이 진 곳에서도 남짓 싹을 움 틔우고 물 한 방울 돕지 않는 갈라진 땅에서도 뿌리를 내리는 나무기도 합니다. 생명력을 그 동기로 삼아 저 자신이 동기가 된 나무라고 할까요. 생을 먹고 자라고 생과 함께 제 삶을 지새우는 나무이지요. 강대하고 질긴 생명력을 테에 새기고 그가 겹겹이 투과할 세월을 그의 외피 곳곳에 오랜 진피 껍질로 덮고 그려놓지요.
그러나 살았으되 이는 죽음의 집합입니다. 나뭇진 속은 옹이 속에 죽어있지요. 갈라진 나무 자락은 죽어있어요. 뿌릿대에 박힌 나뭇 자락은 송골 저를 뿌리 안측에 감춘 채 죽음을 맞이한 상태로 있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죽어있는 것을 살아있다고 함은, 버드나무를 생명력이 강하다고, 살아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의 몸체가, 줄기가, 덩이줄기 일부를 저를 위해 죽여낸 채 제 미약한 줄기나마 살려내 생을 이어나가기 때문일겁니다. 이로 버드나무가 지새운 생은 우뚝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는 이야기의 초입을 알리듯 말했다. 그는 그자가 말하려는 바가 저를 가리킴을 알았다. 남자는 태연히 그자가 한 비유에서 저를 늘어드리며 빠져나갔다.
선생이 버드나무의 내력을 읊도록 화초에 관심이 있는 걸 이놈은 미처 몰랐답니다.
생명력이 강한 거대한 버드나무는 속속 이 죽은 잔가지들이 숨어 있는 쌓인 집합입니다.
제 중추의 생을 위해서 다른 이의 죽음을 이고 사는 나무기는 하지요. 하지만 버드나무는 제 중추와 가까운 곳은 죽이지 않을 텐데요. 이놈이 보기엔 과한 평가인지라.
아니요. 연약하고 가냘픈 뿌리 가락 하나일지언정 살아있다면 나무는 살 수 있을 테니. 버드나무는 필요하면 심장 중앙부에 가장 가까운 곳에 뿌리 줄기까지 죽일 거에요. 버드나무가 제 줄기 일부를 저의 생을 위해 죽이듯 생을 지킬 수 있다면야 가감 없이 쓰겠지요.
허도에는 가을이 내렸다. 태이경은 하늘을 보았다. 창창히 한계를 규정짓지 않고 뻗은 푸름이 긴 하늘을 물들였다. 깎이고 파고에 세 사진 물줄기가 하늘에 진 듯이 새파랬다. 실수로 물감을 지독히 짜내고만 튜브 끝에서 서려 나온 물감잇이 색감을 엉기는 걸 보듯이. 하늘에 엉긴 푸름이 섞여들었다. 모여들어 쏟아지려는 양 위태로운 낙숫대와 같이 하늘에 그려진 푸름은 위태로움과 아슬아슬함을 품고 있으리라.
그날은 유독 건조한 날씨라 생각했었댔다. 높고 푸른 하늘은 날이 건조하고 겨울이 찾아올 징조라지 않던가. 그을진 푸르름이 하늘 곳곳에 진을 지고 있어 이경은 곧 겨울을 대비해 가을옷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눈을 끔뻑거렸다. 실핏줄이 진 눈이 뻐근했다. 이경은 관자놀이를 손으로 재차 누르며 미간 새를 꾹꾹 좁혔다.
허도에 그에게 반기를 든 인물들이 세력을 응집하고 때를 노리며 숨을 감추고 있다는 말이 공기처럼 떠돌았다. 그는 황권을 찬탈하고 말 남자라더니, 황권을 갈아치우고 그가 손에 옥새를 쥐고 말 것이라느니. 보이지 않는 곳에서 궁내 사람들이 뒷말을 내는 소리가 벅적했다. 명목 싸움을 이경은 마음으로 잘 이해하지 못했다. 위 진 시대부터 강자가 왕권을 찬탈하는 일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유황은 하늘이 내린 왕이었던가? 태어나기를 천손으로 태어나 황권을 그의 손에 쥔 사람이었던가. 저잣거리를 횡보하는 남자였다. 그도 찬탈해 명목을 얻은 남자였지 않던가.
이경은 대수롭지 않은 명분을 근거로 들어 소란스럽게 심사만 어지럽힌다고 생각했다. 이경은 소파에 몸을 묻은 채 이 시기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잠시 몸을 눕히고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렸다. 눈에 단 피로를 시기적절히 흘려보내고 업무에 임해야 할 때였다. 이경은 눈을 감고 피로가 붙어 무거워진 몸을 눕혔다. 돌발적인 일에 해결안을 제시해야 하니 첫 번으로 비서가 오갔을 만한 사람들을 찾아보고 보고문을 작성해야 했다. 잡았다 싶으면 빠져나가는 공모자들에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팠다. 이번엔 못 빠져나가도록 잡아 쥘 것이다. 정법 한 문서로 유인해 받아내고, 반 협박이 서린 말을 두르기도 하며, 절대 죽이지 않겠다고 상대를 회유키도 해야 했다. 차후 다잡을 상시적인 일거리는 또 어떻고. 내성의 일거리는 무게와 너비를 못 가늠할 서류로 정돈된 채 쌓였다. 그녀는 성의 군량 목록과 목재와 기자재를 살피며 수성 정책을 정비해야 했다.
이경은 옷소매를 걷어 손차양을 해 눈을 덮었다. 지새진 잠이 덜어지는 듯 손에 점차 힘이 빠지며 어깨가 축 늘어졌다. 확증할 실마리를 잡을라, 숨을 붙이는 시간인 찰나에 실마리를 잡을 수 있는 단서가 떠오를라. 손에 쥐고 붙여놓은 포스트잇이 눈에 들어왔다. 눈에 들어오는 글자가 너울거리며 초점을 잘 잡지 못하다 이경의 손끝에서 종이가 떨어지며 흘러내려 왔다. 우선……. 용의선상에 있는 사람인 문설, 00, --, --……. 그 자의 심복인 자들 중 사람을 택해 회유하고 꼬드겨 단서를 잡도록…… 서로 갈라서게 하는 이간책은 어떠할까. 피가 끓고 장기가 끊어지는 심정이 어린 충신만이 그들의 전체를 이루지 않음은 명백했다. 끝이 구부러지고 유해 꼬리를 끊고 도망갈 어중간한 인간 한두 명은 있기 마련이었다.
힘을 모으려 여럿이 집합할수록 사람들은 틈 없이 맞물릴 수 없기 때문에 숨구멍을 파고 도망갈 꿍꿍이속을 차리고 말리라는 것이 이경의 지론이었다. 저를 홀연히 방에 짓들 다 개진하며 떠나는 연기처럼 사는 자가 아니고서야…. 그래, 그 인간처럼……. 그녀의 눈앞에 번뜩이는 광채처럼 그 사람이 스쳐 지나간 것은 뜻 모를 일이었다. 이경은 간혹 그녀가 힘겨운 일에 빠질 시기에 그녀 부군을 머릿속에서 적확한 형태감으로 그려내고는 했다. 눈에 들어오고, 손에 잡히고, 숨이 느른히 빈 곳을 차지하고, 싱긋 웃어 쥐는 웃음이 새하얗게 반 무의식중에 떠오르는 공백 사이로 흘려 들어갔다. 잠시 눈을 붙이기 전 그의 얼굴을 무의식중에 떠올린 것이 꿈속에서 이어졌다.
이놈이 보고 싶냐는 거지요.
그래요, 내 당신을 찾지 않고야 누구를 찾겠습니까.
그녀는 속내로 관념에 답했다. 그녀는 입 새 사이로 웃음을 흘리며 피 웃었다. 고향을 찾는 동물이 제 살던 곳으로 돌아가듯이 그녀는 마음속에 귀부할 장소로 그와 함께 향하고는 했다. 무의식에 그려진 그림이 촛기에 흐드러진 연한 연무처럼 그녀의 심사를 가로젓는 것이었다. 웃음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는 영 느물느물한 태도로 허리께에 올린 손을 가늠하듯 펼쳤다가는 목 깨에 몸을 폭 묻는 것이었다. 귓전 가까이에 서린 소리가 단단하고 감아쥔 형체로 떠올랐다가 느른하게 떠도는 틈새에 제가 설 곳을 잃고 흐트러졌다. 설설 웃으며 살랑살랑 파고드는 웃음이었다. 이내 그가 몸 깨를 기울여 그녀에게 웃어대는 장면들의 연속이 그녀에게 떠올랐다. 당신에게 말하지 못 하는 말과 숨의 틈새가 꿈속에도 있었다. 틈새와 틈새 속의 빈 곳. 웃음과 느른한 여유 속에 잠재된 채인 고요. 나뉘지 못하는 언명과 제 작은 숨이 몸을 기울이는 곳. 고요의 살풍경한 풍경이 창창했다. 남자는 웃음 짓지 않고 부드럽게 인상이 풀어진 채 그녀를 물그러미 쳐다보았다.
웃음 짓는 표정 외의 표정은 본 적이 없어 꿈속에서 이경은 망연히 그를 쳐다보았다. 이경은 눈을 떴다. 다람쥐 파노라마가 찍힌 요가 빈틈없이 몸을 감싸았으며 목에는 목베개가 둘린 채였다. 빈틈없이 문이 닫혀 있기 때문에 아주 좁은틈새를 통해 바람이 들어올 터였다.이 사명을 완벽히 완수하겠다는 듯이 요 몇 겹이 이경 몸 위에 꼼꼼히 올려져 있었다. 바스락거리며 요를 들춘 이경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겹겹이 쌓인 요를 바라보았다. 요들이 제각기 다른 다람쥐 패턴을 지닌 채 패턴을 자랑하듯 그곳에 펼쳐져 있었다. 공을 주고받는 다람쥐, 또 들춰보니 올라섰다 내려섰다. 시소 순서를 기다리는 다람쥐, 다시금 손을 가스름히 세우고 들여보니 뒹굴 공 위에서 흔들거리는 다람쥐, 한 겹 더 들추니 끝이 갈라져 뻗은 화초 끝에서 리듬을 까닥거리는 다람쥐가. 이경은 패턴의 반복에 사로잡히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이경은 범인을 즉시 알아냈다. 그녀를 다람쥐로 둘러쌀 인간은 이 후한에 단 한 명뿐이었다. 목베개를 뗀 이경의 눈짓이 자연히 갸웃 목베개측에 멤돌았다. 목베개 무늬는 서로 공을 주고받는 시늉을 하는 다람쥐 모양 패턴이었다. 다람쥐 패턴을 깡그리 모으는 데에 흥미를 붙이셨습니까, 아주. 이경은 그에게 베개를 둘러준 사람의 정체를 너를 짐작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네 모자로 굽이진 곳 끄트머리에 한 잔영이 차를 끓이고 있었다. 이경이 발을 힘껏 돋아야 닿을 높이에 있는 곳에 잔영은 제 자리를 두고 서 있다. 달그닥 하고 가재 도구가 흔들리는 음성이 그녀 귓가에 잘근거리는 소리로 들렸다. 부피 층을 스치는 듯 사르락거리는 거리는 음색, 떨림이 만드는 반질거리는 소리... 작은 속삭임과 같이 층을 스치며 제 존재감을 위용 하는 물건의 음색이 그녀의 귓가에 들렸다.
이경은 몸을 소파에 깊이 묻고 이마를 손으로 덮은 채 숨을 묻었다. 이경은 말했다. 집에 안 가십니까. 정시에 집에 갈 채비를 바삐 하느라 서두르시는 분이요. 그는 소파 뒤에서 고개를 기울이며 이경에게 다가서 느른히 웃었다.
“먼저 퇴근한다고 누가 섭섭해 할까 봐 의리를 챙기기로 했지.”
가후는 거울을 이경의 콧잔등 앞에 가져다 댔다. 꿈속에서 부단히 뛰어다니셨나 봅니다. 공 주고받고, 시소 타고, 먹이를 찾아 천하 종횡하는 다람쥐가 바쁘지, 그 누가 바쁘시렵니까. 그는 활개하고 있는 다람쥐 패턴에 눈 깃을 기울였다. 그는 놀리는 어조로 말을 비죽거리며 말하다 얄궂게 이불깃의 무늬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거울 앞에 선 제 상이 사뭇 눈에 들어왔다. 이경이 소파에 대강 몸을 묻고 자는 바람에 머리가 삐쭉 빼쭉 뻗어져 머리칼은 개성을 자랑하기에 바빴다. 정수리에서 드러난 머리칼은 제 뻗어진 구불거림을 온 구석에 펄럭였다. 자유로움을 활개 치는 듯 왼쪽에 있어야 할 머리칼이 오른쪽에 있었고 오른쪽에 있어야 할 머리칼은 구불거림을 넘지 거리지 못하고 뻗을 대로 뻗었다.
머리칼을 넘겨주는 손길이 부드러웠다. 그는 손 새를 뻗어 손에 이경의 머리칼을 감고는 대강 부드럽게 정돈해주었다. 삐쭉빼쭉 어지럽게 올라선 곳은 손을 뻗어 안쪽으로 머리칼을 다듬어주었고 가라앉을 대로 가라앉은 곳은 둥글게 말아준다. 뺨에 붙은 머리칼은 떼어 고스란히 제가 있어야 할 곳을 안내해주었다. 아랫깃에 말대로 말아진 걸 부드럽게 펴주고 가스란 하 내앉은 곳을 둥글게 띄워주는 손길이 엇나감 없이 익숙한 것이 그들이 살아온 시간을 확증했다. 시간이 길이 배어있는 길은 찰나에 수십 년의 깊이를 담으리라. 이름을 알린 세필 가가 짓는 붓의 숨결이 몇 초 언저리일지언정 그들이 깃든 붓이 만든 길에 부단히 애쓴 시간이 담기듯. 그들이 완성키 위하여 수만의 밤 동안 고민으로 지새워온 시간이 붓끝에서 묻어나듯이.
마주치는 눈 깃, 둥그스름히 올라갔다 웃어 낼 때면 느물느물하게 여유를 품고 내려앉은 눈꼬리, 내 덥혔다 부드럽게 앉는 작은 숨결, 윤곽 진 곳을 더듬을 적에 겹쳐지는 열기, 머릿속 중 어디를 부드럽게 감아쥐고 뻗어내야 하는지를 알아 머리 곳곳을 다독이는 손길... 그의 손끝에서 묻어난 찰나는 수만의 밤을 의미했다. 머리칼을 넘겨주는 손길이 귓전을 스치며 지나가다 귓불을 간질였다. 인간이 정말. 그녀는 몸을 움찔 떼였다가 그에게로 시선을 당겼다. 이내 그가 웃으며 귓가 뒤를 두어 번 간질이는 손길에 웃음이 머금어졌다. 물끄러미 그의 시선 끝을 쫓았다. 남자는 화답해 싱긋 웃었다. 이경은 말했다.
“ 커피는 주지 마십쇼. 혀끝이 단맛으로 물려요.”
“ 이놈이 말하지 않아도 아는 터라. 차 끓여왔어.”
다람쥐 모양이 패턴으로 찍힌 머그잔이 그녀의 손에 쥐어졌다. 물그러미 컵 위를 가로 짓는 디자인을 보다 보니 그에게 승복한 기분이 들었다. 다람쥐…. 말을해도 흐지부지 넘어가는 남성의 태도가 연이어지는 것이 일상인 걸 떠올리며 이경은 입을 주춤거리다 말을 멈췄다, 차를 머금으니 입술 끝에 옅은 재스민향이 퍼졌다. 향이 좋고 신경을 기민히 일깨워 이경이 자주 즐기는 차였다. 그들이 지내온 틈새 속 작은 일들은 그들이 지나온 시간을 알렸다. 연기로 희뿌옇게 올라오는 차를 이경은 홀짝 마셨다. 다람쥐 담요에 다람쥐 목베개에 다람쥐 찻잔에 끈덕지게 다람쥐 패턴이 그들 새를 돌아다녔다. 유일하게 이질적인 것은 개목걸이를 하고 머리끝을 핑크빛 머리칼로 염색해 강아지를 떠올리게 하는 남자뿐이었다.
시선을 기울이며 그를 보아 하자니 어느새 가후가 프레스 비를 입에 함빡 문 강아지처럼 서류를 가져갈 수 있는 데로 가져갔다. 역이 걸린 중한 업무에는 그도 도무지 방도가 없었던 모양이라고 이경은 생각했다. 더워진 찻잔 속 물이 속을 따스하게 물들였다. 이경은 의자에 앉아 서류를 넘겨짚었다. 그녀손에 쥐어진 서류를 펜을 그으며 처리했다. 토독.. 손에 쥔 펜이 외탁 아래에 떨어지며 그녀 손에서 멀어졌다.
펜을 줍다 그녀는 가후를 곁눈질하며 그를 살폈다. 몸을 책상 위에 구부린 채 그는 자리에 앉아 자료를 내 감히 컴퓨터 옆에 쌓아놓았다. 팔에 고개를 기대다가 그는 꺼내놓은 종이에 그가 받아들인 정보를 끄적이는 듯이 보였다. 멈춤 없이 글을 써 내려가다 그는 잠시 몸을 멎으며 펜 움직이기를 그만두었다. 바늘귀에 실을 끄집어내듯 남짓 남짓 넘어올 듯 말 듯 한 생각을 확연히 잡아내려고 할 때 그는 찰나의 순간 펜촉 위 뚜껑을 바라보고는 했다. 그러다, 그렇지. 이경은 그가 다음에 할 행동을 잘 알았다. 그는 볼펜 끝을 책상에 토독 규칙적으로 들리는 음색으로 두들기다가 멈춤 없이 종이 위에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남성이 펜 끝을 두들기며 머릿속 활자를 맞춰내는 방식은 서툴고 거칠지도 않았고 우아하고 유려하지도 않았다. 자신이 이룰 자리 위에 그가 올릴 의미 속 정연함을 너울거렸다.. 충동과 갈망에 섞인 탐색이 없이 그는 수학자가 도식을 도해해내듯이 풀어나갔다. 열망도 갈망도 없는. 통속적이지도 현실에 초연하다고도 볼 수 없는 남성의 태도를 이경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남성에게 의식을 기울이느라 의식은 그녀가 해야 할 서류에서 점차 멀어졌다가 그가 그녀를 부르는 소리에 이경은 의식이 점차 슬려 올라왔다. 그의 얼굴에서 웃음이 빙긋이 떠올랐다. 아이고…. 며칠 밤잠 새느라 피로감이 몰려오는 걸 이놈이 알지요.
항상 웃는 남성의 표정이 생경했다. 무의식 속에 떠오른 꿈 때문이었을까, 그날 이경은 상실감이 들었다. 이경은 알았다. 그를 보는 것은 머나멀게 떨어진 이야기였다. 이경이 원하는 것은 법칙을 아우르지 못하는 세계의 위반과 같은 일이었다. 달이 태양처럼 눈부시게 반짝일 수 없고, 냉골이 불타는 듯 뜨거울 수는 없었다. 알면서 태이경은 때로 상상이 자아낸 백일몽을 일상에서 그려내는 아이처럼 현실에서 헛되다 싶은 꿈을 꾸는 것이었다. 당신의 한숨을 보고 싶고, 눈 끝을 비비며 짓는 잠에서 깬 표정을 보고 싶고, 입이 옴짝 이고 속이 근질거린다는 듯 바라는 걸 보는 표정을 보고 싶었다.
상념을 비벼끌 수 있다는 듯이 이경은 한 페이지를 펼쳐 펜 뚜껑으로 페이지를 꾹꾹 눌러댔다. 감정은 유연한 몸체를 지녔기에 눌러서 응축할 수 있다는 듯. 그날은 마음이 두들겨지는 듯 따가웠다. 눌러진 자국이 선연하게 이경의 눈에 들어왔다. 꾹꾹 눌러져 페이지를 채우고 있는 자국이 그날은 유독 진했다. 눈시울이 시큰하게 점차 묵직해져 숨을 아프게 누르는 날이었다. 눈가에 스멸스멸 이어지는 웃음이 떠오르고 마주 보며 가는 웃음을 짓고 활짝 활개에 친 웃음이 펼쳐지는 것이 전부인 남성에게서. 더 감상적인 기분에 젖고 싶지 않아 이경은 억지로 말을 이었다.
“더 잘 테니 한숨만 지나고 깨워주십쇼.”
팔에 얼굴을 묻은 채 이경은 까무룩 눈을 감았다. 서린 감정을 눈꺼풀 너머로 밀어뜨렸다. 이경은 속내에 소멸 스며든 단어를 머릿속에서 흘겨버렸다. 이경이 특출난 능력은 기대감을 머릿속에서 지우는 것이었다. 죽을 때까지 나는 당신을 볼 수 없을 것이다. 팔로 눈이 가려져 속내에 머금은 감정을 홀로만 담아낼 수 있음을 안도했다.
꾹꾹 눌러낸 감정은 제 접힌 몸을 완연히 펴 이경이 억지로 재워온 시간을 깨우기 시작했다. 이경이 바라는 소망이 단어로 떠오르는 것은 이 지상에서 흩어 버렸거늘. 어둠 속에서 들리는 내밀한 속삭임과도 같이 때로 이경 마음에 슬며시 접어드는 것이었다. 처음에 드러난 음색은 작은 바람 소리에도 흩어지도록 가벼웠고, 마음을 울리지 못하도록 목청은 평이했으며, 마음에 부품을 부를 특색은 없었다. 작고 세밀한 깃털이 떨어지는 듯이 울림을 주지 못했던 음성은 작은 메아리가 동굴 끝에서 큰 파동으로 돌아오듯이 그녀에게 접어들 때가 있었다.
소망이 일깨워진 것은 아주 작은 계기였기에 정확한 원인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는 왜 당신에게 바랐을까.
이경은 질문에 답하지 못할 것이다.
*
세계가 지고, 하늘을 지키던 휘광은 물러가고, 세계를 그려내던 빛은 작은 윤곽만을 남기고 사그라들었다.
고요가 나부꼈다. 방 안의 형광등은 환히 켜져 방안을 가득 비추고 있었다. 이경은 책상 위에 그녀가 품에 실은 서류를 내려놓았다. 태이경은 결론을 낸 듯이 책상 위에 손을 뻗어 지도를 잡았다. 방 안 책상 위에 펼쳐진 지도 위에 다채로운 색상의 펜이 그어져 그들이 처한 상황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폐쇄된 곳이라는 표시로 이경은 붉은 펜을 써 빗금을 칠했고 모반자가 들를 여지가 없는 곳은 붉은 펜대로 그어 지도는 선이 지나간 자리로 가득했다. 이경은 담담한 목소리로 자환에게 붉은색 장소를 들를 가능성은 지워도 좋다고 했다. 한 곳은 승상에게로 가장 빠르게 향할 수 있는 곳이었기에 허 중랑장의 엄호가 삼엄했다. 남은 장소는 전략 중추지였기에 경비가 삼엄했다. 허도를 방비하는 군대를 전방에 빼곡히 줄 세워 불과 일각도 안 되는 시간에 실패할 역을 꿈꾸지 않는다면야 그들이 그곳을 노릴 이유는 없었다. 이경은 푸른빛으로 그들이 향할 경로를 표기해두었다. 그들이 향하여 갈 곳은 세 곳으로 압축해 말할 수 있었다. 이경은 말했다.
“ 여기가 시작점일 겁니다. 이곳을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곳으로 볼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전략적인 이유이고 두 번째는 심리적인 이유입니다. 첫째, 지리가 복잡하고 산이 높고 험준해 군대를 탁 트인 평지에서 하듯이 정면에 배치해놓을 수 없습니다. 방비를 철옹성같이 한다고 이들이 진 기지 전체에 군사를 배치하기 위해선 허도 중앙부의 군사 중 다수를 이곳으로 빼내어야 하지요. 중앙부에 속한 군사를 돌린 데도 성동격서 계책이라, 이곳을 기점으로 삼아 허도성에 파고드는 척 하다가 실상 중심이 되는 군사는 우회로로 빼돌려 엄중한 엄호가 풀린 중앙부를 향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군대를 섣불리 움직일 수 없는 자리입니다. 두 번째, 반역을 저지른 자 중 한 명은 이곳에 근거지를 두고 있고 방비를 맡은 사령관이었으니 이곳을 관문으로 삼기에 쉽고 심적으로도 익숙한 곳일 테니까요. .“
“ 장군님은 저와 가시지요. "
태이경은 자환에게 말했다.
*
적병의 칼이 파고든 곳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눈을 끔벅거렸다. 심장에서 맥동을 타고 빠뜨림 없이 올라오는 열기가 마지막 남은 온기를 쥐어 짜내는 듯이 몸 곳곳에 뜨겁게 스며들었다. 이경은 손바닥에 꽉 힘을 쥐었다. 열기가 손아귀에 잡혔다 흐트러졌다. 통각을 겨우나마 열기가 막아주고 있었다는 듯이 이윽고 고통이 자리를 대신했다. 심장에 내 붙은 숨은 가느다란 숨의 맥동만을 붙잡고 있었다. 떨어뜨릴 듯 말 듯이 아픈 가는 숨이 점점 쌓여 폐부에서 미끄러졌다. 깊은 곳에서 새어 나온 숨 자락을 놓임과 동시에 이경은 숨이 꺼질 것을 알았다. 복부에서 숨은 뜨겁게 차올랐다. 차오르는 숨이 외로 가늘게 서려지며 입가에서 내뱉듯 떨어졌다. 이경은 심장을 손으로 붙잡아 겨우 제 아픔을 견뎌내야 했다.
“물러……, 서십…. ”
이경이 자아낼 말은 뭉개져 온전한 문장이 되어 나오지 못했다. 잇새에 붉게 피가 흐르도록 힘을 주어 붉은 선혈이 입술에서 새어 나왔다. 힘을 짜내듯 쓰려 입술에 압박을 준 것이 입술을 터지게 했던지 상대의 외 혈 자국이 입가에 불그죽죽하게 물들어 있었던 것인지 감히 분간치 못하리라. 앞을 가르는 상대를 일격으로 베어내고는 이내 왈칵 내 혈을 토해 이경의 잎줄기에 흐르는 핏줄기가 망울진 채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
날을 세우고 파고드는 검이 이경의 옆구리를 스쳤다. 칼을 잡아쥔 채 이경은 그의 소매를 억세게 낚아채고는 내팽겨쳤다. 힘을 억세게 손에 준 바람에 옷 소맷자락이 찢어지는 음색이 귓가에 들렸다. 전투화 밑창 아래 갈라진 곳이 끌려 땅에 쓸리는 음성이 밀려왔다.
칼을 바닥에 끌다 이경은 그 자리에서 몸을 버티지 못한 채 제 무게감을 잃고 몸을 무너뜨렸다. 의식이 점점 잦아들었다. 의식 너머로 점차 잦아드는 음성이 쏟아지다가 멈추었다. 그녀 주위에 발자국 소리가 점점 짙어지며 쏟아졌다. 이경은 잦아들어 가는 의식 속에서 그녀가 발견할 수 있었던 말을 무의식 속에 외로 풀어놓았다. 주군께 몸을 의거한 그 사람이 살 수 있도록. 머리끝에 분홍빛이 진 남자가 눈가 안측에 가물거렸다. 사십시오. 주군. 이윽고 속내로 읊조려지는 문장이 서로 간 포개어지며 점점 의미를 잃어갔다. 이경은 구원군이 그들에게 도달했는지를 알지 못했다. 멈춰진 걸음 소리. 검이 부딪혀가며 병정들이 합을 주고받는 음색. 검이 으스러질 듯이 서로를 간섭하며 나는 소리. 소리는 머릿속에 징을 울리듯 울리다 이내 캄캄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속을 후벼 파는 듯한 아픔이 찢어질 듯한 통각으로 변모해 그녀 몸을 그을렸다. 고동치는 심장 소리가 귓가에 쿵쿵 울렸다.
죽음을 아는 사람은 죽음을 완벽한 안식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제 뜻을 다하려 들다 실패한 병정에게 쥐어진 죽음은 세계의 뒤축에 못 박힌 소망을 떨쳐내질 못한 영구한 미련이었다. 긴 침묵이 창창했다. 세계가 외방향으로 기울기를 멈추는 곳. 우리가 서로에게 미끄러질지언정 서로의 시선을 결코 쳐다볼 수 없는 곳, 당신에게 다가서는 걸음이 갈 방향 대가 꺾여 배회하는 곳. 이경은 깨달았다. 미끄러질 온기가 그녀 숨 새를 가득 채우고 있단 것을. 축 처진 몸을 가득히 안아 쥔 채 그녀 품을 들어선 사람이 있다는 것을. 손을 느른한 팔을 뻗어 잡아 쥐고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 안는 손길이 있다는 것을. 마지막 휘광이었을까. 점점 의식 속에 단어가, 문장이, 문단이, 책이, 세계가,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이경아, 이경아, 나직이 귓가에서 읊조리는 듯한 음색이 들리다 쏟아질 듯한 선명함으로 그녀 귓가에 음색이 파고들었다. 당신이었다. 구원군이 왔다는 안도에 평온감이 찾아오기는 잠시였다.
이경은 죽음 가까이에 접어들고 있었다. 외로 떨어지는 음성이 귓가에 접어들었다. 이경은 기울어진 어깨에 남은 힘을 쏟아냈다. 이경은 연신 눈을 뜨려고 하다 눈꺼풀이 들려질 법한 새에 움직임을 멈췄다. 당신이 지은 표정이 해석의 잣대를 가려내는 틀을 붙여낸 채 봐야 할 표정일까. 가면 언저리에 주름이 진 걸 보며 배우의 표정을 가늠해내는 객석 앞 관객처럼 나는 당신이 속내에 자아낸 표정을 어림잡아야 할까. 눈가에 비친 그림자가 방향 지어진 걸 보고야 당신을 해석해야 할까. 나는 볼 수 없으리라. 그래도 당신은 살 테니까. 이경은 안도하며 입꼬리에 웃음을 슬며시 떠올린 채 눈을 감았다. 이경은 뜰 수 있었던 눈을 감고 말았다.
이경의 팔이 힘을 잃고 품 안에서 스러졌다. 뻣뻣이 온기를 잃고 손끝은 그녀 생의 마지막을 알리는 듯이 온기가 식어 있었다.
* 추신. 붙이지 못한 이야기를 동봉합니다.
그는 그가 처리한 서류를 들고 가 이경에게 보여주었다. 말끔하고 깔끔히 정제된 글씨가 가득 종이 위 줄칸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남자의 입매가 부드럽게 쫑긋 솟았다가 설설 입꼬리를 내리며 느른히 퍼졌다. 행동을 종잡을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남자가 썼다기에 글자는 반듯하고 자기절제에 능한 사람이 써 내려간 글 같이 보였다. 몸을 그녀에게 맞춰 기울어진 시선은 물속에서 둥근 원무가 퍼지듯 점점 둥글어졌다. 그는 말했다.
“이놈이 보기에 가담자중 중심 주동자는 위왕을 노리지 않을 것으로 보이네요. ”
그는 외로 중얼거리듯 말을 이어냈다.
제 가족의 죽음에 관여한 사람을 노릴 테지.
싱긋 웃으며 가늘어진 눈매와 둥근 눈매가 마주했다. 책 옆에 붙였던 손은 그에게 서류를 받기 전 우뚝 서 허공에 멈춰진 채로 있었다. 요 며칠간 밤샘을 거듭해 실마리를 쫓다 잡아낸 단서를 체계적으로 규합해 정리하고 결론지은 것이 그가 몇 시간 생각하고 내린 결론과 같음에 이경은 혀를 내둘렀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남자는 가는 손을 뻗어 그녀 손에 서류를 쥐여주었다. 패드를 꺼내 한 가담자가 실린 사진과 그가 쥐여준 서류를 흘깃 비교해가며 살폈다. 자료에 실린 남자는 범 같은 인상이었다. 속내에 상대를 물어뜯으려 날 선 손발톱을 갈고 뜨거운 숨을 도사리면서도 사냥감이 눈앞에 들어서기 전에는 미동하지 않는 범. 묵묵히 제 안의 것을 감내하지 속내를 드러내지는 않을 적막함이 남자에게 도사려져 있었다. 남자는 제 속내에 원성이 가득 찬 목소리를 가둔 채 칼을 갈고 칼에 바를 독 깃과도 같은 인간상을 모았으리라.
“가형 말 대로입니다. 거리에서 떠돌며 배를 곯고 있는 부랑자의 자손을 안쓰러운 마음에 데려왔다기엔 마치 친자식을 대하지 않는 듯 처신하지 않습니까. 그의 귀환 소식을 듣지 못했다며 들어온 정보가 누락된 척, 행방이 묘연하단 식으로 떠보니 얼굴이 얇은 얼음장처럼 새하얗게 질리더군요. 사람을 붙여 행방을 쫓으니 덜덜 떨며 문설님이라 칭하며 아들을 찾으러 다니며 읊조리는 걸 보았다고 합니다. 제, 아들에게 하는 처사라기엔 과한 존중이지요.”
아이고, 무서워라. 사공부 소속이시오. 삼엄한 추궁에 이놈은 숨길새가 없는지라.
그러니 잘 하십시오. 자주 놀리시다간 가형이 숨긴 비상금 제가 찾아 모조리 적금에 들어 넣을지 압니까.
“ 수십 년이 흘렀습니다. 체제가 완비되고 지배 체제가 공고해진 터라 한 사람의 암살로 일을 갈무리할 수는 없을 겁니다. 이미 무너져 내린 사직은 보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자는 망루 끝 위에 올라 새벽에 물 흐르듯 내리는 별빛을 보고 사는 이상주의자가 아니지요. 실속을 차린다고 알려진 그자가 이 반역을 주동하고 가담한 이유는 제 원한을 갚기 위함이겠지요. 후계자 자리를 공고히 하려하셨지요. 당시 물밑에서 정치판을 이끌고 예기를 번뜩이신 분. 승상께서 전장에 나가신 중 그에 반하는 세력을 이루는 중추인물을 샅샅이 색출해 없애내신 분은 가형과 내가 잘 아는 한 분이지요.”
오관중랑장.
*
밤이 열렸다. 나뭇잎들이 스산하게 창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사각이 진 외 창에는 내부를 채운 물건들이 검게 그림자가 진 채 흔들거렸다. 내부에 앉은 사람들은 흐드러진 공기에 긴장감이 서린다는 듯 긴밀히 엄중한 눈빛을 품고 앞으로의 일을 논할 준비를 했다. 긴 외탁에서 일어나 이경은 시선을 잘 주시받을 수 있는 곳에 섰다. 참석자는 이경을 보고 이경이 방금 내준 서류뭉치를 힐끔거렸다. 가는 눈빛이 점차 이경에게 몰렸다. 이경은 말했다.
“ 자료대로입니다. 제가 유추하건대 장군님이 표적일 겁니다. 군사 증강을 부탁드려야 합니다.”
사위가 적막했다. 이 자료대로라면 군사 증강이 필요한 것은 부정할 바가 아니었다만 그들 마음에 뒤채인 일에 모두가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들은 이윽고 눈빛으로 술렁거렸다. 눈빛이 진 침묵이 그들 사이를 배회했다. 상대가 받아주기를 바라며 물끄러미 시선을 보이고 상대는 마주친 눈빛에 힐끔 놀라고 다른 자에게 시선을 던지며 서로 떠넘기기 바빴다. 한 고신 이 못 봐주겠다는 듯 외탁에 기댄 손을 펼치고 팔을 치켜들었다.
“안 돼요, 그건 안 될 말이십니다. 호위에 붙일 병력을 추가하여 배치해 달라는 요청을 할 수는 없습니다. 더 균형을 잃는 요구를 해서는 안 됩니다. 중랑장님과 임치후님. 두 공자님이 행함이 후사를 잇기에 지엄한지 아닌지 보며 처신함에서 눈을 떼지 않고 모든 행실을 저울에 재듯 엄히 평가하시는 승상께서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목숨을 걸고 위험부담을 감수하라는 말을 감히 제 주군 앞에서 꺼낼 수는 없었기에. 그들 속내의 말을 흔쾌히 대변한 고신에게 남은 자들은 고마워했다. 군사를 증강하지 않으면 중랑장의 목숨이 위험하고, 증강할 시에는 승상의 신뢰를 잃는다. 두 엇갈리는 상황에서 날 선 칼로 책을 가르듯이 한 저울의 축을 무너뜨리는 결정을 쉽게 내릴 수는 없었다만. 자환에게 소중한 것은 위험부담을 감수하고도 승상의 인정을 받는 것이라는 걸 이경은 알았다. 외정 출장을 나갔던 가후는 다급한 일을 끝마쳤으니 곧 돌아올 터였다. 자환은 어느 위급한 순간에도 계책을 낼 참모를 원하니 군사 증강이 안 된 상황에서 그를 데려갈 것이다. 그의 목숨이 위급한 상황에서 이경이 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있었다. 그건...
“ 가 선생은 검을 든 자를 대열에 배치해 운용할 줄 알지, 검을 잡아 상대를 순순히 벨 줄은 모릅니다. 저는 검을 조금이나마 잡을 줄 압니다. 최악을 가정하고 싶진 않지만, 계략이 들어올 수 없이 상황이 꼬여 엎질러진 상태에선 제가 힘이 될 겁니다. 오늘 계책을 낼 길잡이는 검을 뽑고 휘두르는 발검도 할 줄 알아야 할 테니 주군은 저를 데려가시지요.”
이경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