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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드림 합작에는 사망 소재 가 포함되어있습니다.

* 본 드림 합작에는 자살 소재 가 포함되어있습니다.

* 본 드림 합작에는 최유기 외전의 스포일러가 담겨있습니다.

* 본 드림 합작에는 최유기 이문의 스포일러가 담겨있습니다.

 

 

 

 

 

 

 

 

   “오공을 부탁할게.”

 

  네가 그렇게 말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아이를 살릴만한 힘이 없었다. 아니, 할 수 있더라도 나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나는―….

 

 

 

  ― 그 아이보다, 너를 살리고 싶었어.

 

 

 

 

 

 

  내 신이자 스승인 권렴이 죽었다. 그의 친우, 나의 두 번째 스승과도 같았던 천봉 역시 죽었다. 분명 그럴 것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들이 남아있음에도 천계군이 우리를 쫓아 올 리는 없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지? 머리를 굴려봐도 나오는 답은 없다. 당연했다. 이곳, 우리가 살아가는 천계라는 곳은 애초에 ‘상식’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으니까. 늘 소수의 개미공을 희생시켜 다수가 안정된 생활을 누리며 서로 정치싸움을 하는 곳이 이곳이었으니까. 우스웠다. 그들이 요구하는 희생은 나이와 성별을 가리지 않았다. 아주 오래전 내가 그랬고, 또 ‘나타’가 그랬다. 자신의 안녕을 위해 자신들이 금기로 정해놓은 일을 행하는 것조차 서슴지 않았다. 나타도 그렇게 태어났고, 재앙, 「제천대성」을 죽이기 위해 만든 나도 그랬다. 분명 천계도 예전엔 이러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물이 고이면 썩어가듯이 천계도 그렇게 된 것일 뿐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뽑힌 개미공은 이 작은 아이였다.

  오공이란 이름을 가진 이 어린아이는 재앙을 가지고 올 「제천대성」이라 하기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였다. 그저 호기심 넘치는 어린아이였던 오공은 어른들의 정치싸움에 휘말려 이렇게, 도망치고 있었다. 이 순수하고 어리기만 한 아이는 자신의 친우인 ‘나타’를 잃었고 그 충격으로 한차례 「제천대성」으로 각성했었다. 그리고, 그 힘은 눈앞에서 달리고 있는 이 사내에 의해 봉인되었다. 「제천대성」이 아닌, 아직 순수한 아이인 오공을 지키려 천계에서 하계로 망명하기로 한 우리는 그 게이트를 통과하기 위해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달리고 달렸다. 쫓아오는 천계군을 막기 위해 하나하나 그 장벽을 넘어갈 때마다 그 자리에 남아있던 자들은 죽었다. 아마, 눈앞에 있는 이 사내도 알고 있었을 것이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나아가야 했다. 그들의 시체를 넘어서라도 반드시 이곳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백랑, 할 말이 있다.”

   “천봉이 그랬어.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그런 말을 내뱉는 건 사망 플래그 꽂는 일이라고. 정신 차리고 달리기나 해. 하고 싶은 말은 하계에 내려가서 하고,”

   “만약 내가 죽게 된다면 오공을 부탁해. 나는 하계에 내려가도 전투능력이 없어서 오공을 지켜줄 수가 없어. 하지만 투신이었던 너라면 다르겠지.”

 

  너는 그렇게 말했다. 내 말을 듣지 않고 그렇게 내뱉었다. 나쁘다. 이건 악질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내가 너를 좋아하는 걸 알면서도 너는 늘 나를 버리고 멀리 떠나갔다. 지금처럼, 이렇게. 자신을 가장 먼저 생각하고 있는 나 따위는 무시한 채 자신의 태양을 향해 멀리멀리 떠나갔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네가 살아있기만 한다면, 나는 이곳에 남아야 한다고 해도 웃으며 남을 수 있었다. 앞서 달려가는 오공을 바라보았다. 눈앞의 사내, 금선과도 같은 긴 머리가 한들한들 흩날리고 있었다. 자신의 친구들이 죽은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년은 달리고 또 달렸다. 잠시 내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려는 듯 고개를 돌린 소년의 눈동자는 태양과도 같았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금선이 이 아이를 지킨다고 한다면 나 역시 이 목숨을 바쳐 이 아이를 지키리라. 그러나 곧 천계의 게이트 앞에서 우리의 발걸음은 멈추고 말았다. 천봉이 알려준 패스워드와 설정된 패스워드가 달랐다. 아마 우리의 탈출을 눈치채고 패스워드를 바꾼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지. 부숴서라도 나가는 수밖에.”

   “할 수 있겠어?”

   “내 위치를 알리는 꼴이긴 하지만 할 수는 있어. 그 이후엔 나는 여기 남을 거야. 너희들만 나가야 해.”

 

  금선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원래부터 험상궂었던 인상이 더 찌푸려지니 못생겼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아마 권렴이 본다고 해도 그렇게 말했으리라. 금선을 가만히 보고 있자 금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방도가 없으니 이렇게라도 해야 했다. 이들을 살아나가게 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다.

 

   “싫어! 그럼 백이 형은 어떻게 되는 건데? 권이형도, 천이 형도 안 오는데, 백이 형까지 여기 남으면….”

   “나는 권렴과 천봉을 데려갈게. 걱정하지 마. 응?”

 

  행동을 멈추게 한 건 오공이었다. 소년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이 소년은 죽음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인정하기 싫어서, 묻어둔 것이겠지. 짧은 대화를 나누던 사이 뒤쫓아오던 군사들이 총과 화살, 각각 자신의 무기들을 겨누고 이쪽을 바라봤다. 내가 투신이었을 적, 내 부하였던 녀석들도 있었다. 이 자식들, 어디 붙었나 했더니.

 

   “성공하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안되셨소, 금선 동자. 백랑 태자.”

 

  이탑천, 모든 일의 흑막이 그곳에 있었다. 권력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한 이탑천은, 나를 만들어낸 데이터를 가져가 좀 더 완벽하게 다듬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게 해 줄 인형인 나타를 만들었고, 실제로 그 목표의 걸림돌인 우리를 이렇게까지 몰아붙였다. 사실, 누가 이곳의 지배자, 천제가 되던, 천제가 죽든 말든 상관조차 없었다. 금선, 권렴, 천봉, 오공. 나의 세상이자 나의 모든 이유가 사라진 이곳은 지킬 이유조차 없었다. 인상을 찌푸리고 그 남자를 바라보며 금선과 오공을 등 뒤로 밀었다. 조금이라도 틈이 보이면 문을 박살 내고 내보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쉽지는 않았다. 애초에 이 많은 군사를 혼자 상대할 수는 없었다. 아마, 금선과 오공을 내보내고 난 후에 나는 여기서 죽게 될 것이었다.

 

   “아무리 ‘최강’이라 불리는 투신이라도 이 군세 앞에선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을 터!”

   “그렇게 이 세상이 가지고 싶으면 가지던가. 왜 우리한테 지랄이야, 지랄은.”

 

  내가 한동안 군사를 막고 있는 사이, 뒤로 돌아간 일부가 금선의 목에 칼을 겨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게 자신이 아닌 오공을 보호하라고 하던 금선이 곧 군사의 칼에 맞아 무릎을 꿇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물론 오공을 보호하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이렇게 오공만을 보호하기엔 그를 포기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탑천이 다시 ‘나타’를 더 완벽하게 만들어내기 위해 오공을 잡으며 나타가 살아있다는 듯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나타가…. 살아있단 말이야?”

   “그래, 네가 원하는 대로 앞으로는 친구와 영원히 살아가는 거지.”

   “오공! 듣지 마! 그 남자는 개인적인 이유로 너와 나타를 이용하려는 것뿐이야!”

 

  금선이 군사의 발에 밟혀 바닥에 얼굴을 찧었다. 그 소리에 묻혔으나 저 멀리 어디에서인가 큰 소리가 난 것 같았다. 바로 알 수 있었다. 권렴이 남긴 마지막 패라는 것을. 아마 그는 자신을 희생해 지금의 ‘나타’를 만들기 위해 실험에 이용된 하계의 요괴를 깨웠을 것이다. 그리고 군사가 가득했던 복도를 천봉이 그 목숨을 희생해 수를 줄여놓았을 테니, 그 요괴는 이곳까지 들어오진 못하더라도 아주 큰 소식으로 다가올 것이었다. 그것이 우리에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몰랐으나,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잘만 한다면, 나는 나가지 못하더라도 금선과 오공만은 하계로 보낼 수 있을지 몰랐다. 그렇기에, 가만히 군사가 시키는 대로 나 역시 무릎을 꿇었다. 내 작은 실수로 권렴과 천봉이 내어준 기회가 물거품이 되게 만들 수는 없었다.

 

   “허허, 이것 참 보기 좋구려. 나는 당신들을 알고 있었소. 태어나면서부터 온갖 복을 누려오면서도 늘 따분한 표정이 사라지질 않았지. 신분과 자존심만 드높은 고관대작들…. 내가 가장 치를 떠는 족속이야!”

 

  금선에게 이탑천이 가지고 있던 지팡이가 내려쳐 진다. 솔직히, 이탑천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이탑천 역시 가장 낮은 곳에 있었고, 이 썩은 천계에서 권력의 피해자가 되었었으니까. 어쩌면 내가 권렴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아마 지금의 이탑천이 내 모습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이렇게까지 자신의 분노를 위해 남을 희생시켜선 안 됐다.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해냈어야 했다. 지금의 이탑천은 선을 넘은 살인자일 뿐이었다. 이탑천의 행동에 오공이 놀란 듯 금선을 보호하려 했으나 군사에게 잡혀 오공 역시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인상을 확 찌푸리고 눈앞의 적을 바라봤다. 조금만 시간을 끌면 된다. 아주 조금만.

 

   “이탑천님, 보고드립니다! 이곳 천제성 지하 실험실 및 지하 30층 동쪽 건물에서 반역자 천봉 원수, 권렴 대장 2명의 토벌 임무를 완료했다고 합니다!”

 

  밖에서 또 다른 군사가 달려와 소리쳤다. 오공은 그 소리에 놀란 듯 몸이 굳어있었고, 마치 예상했다는 듯 금선은 가만히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나 역시 고개를 돌렸다.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으나, 누군가의 입으로 직접 듣는 말은 차원이 달랐다. 그랬구나, 죽었구나. 군사가 뒤이어 뭐라 말을 했으나 듣지 못했다. 전부 흐릿한 느낌이었다. 그 이야기가 이탑천을 따르던 그의 동료의 죽음이라는 것을 안건 뒤이어 이탑천이 외치는 말 덕분이었다.

 

   “고작 쥐새끼 두 마리의 목숨이 내 벗을 둘이나 길동무로 데려가다니!!”

 

  우리는 약속했었다. 망명이 끝나면, 하계의 벚나무 밑에서 만나자고. 그러나 그 약속은 지킬 수 없게 되었다. 아니, 사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우리는 죽을 것이다. 그래, 그 약속은 거짓이었다. 알고 있었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다. 죽었을 것이라고. 그런데, 만들어진 탓에 아려올 리 없는 심장의 한쪽이 아려오더니 그래도, 약속 따위 지키지 못해도 괜찮으니 살아만 있으면 되는 거라고 그렇게 믿고 있었던 마냥, 쓰렸다. 그리고, 지옥 같았던 시간이 지난 후, 건물이 무너졌다. 아주 순식간이었다. 건물이 무너졌다. 요괴는 없었으나 무너진 건물은 시간을 벌기엔 충분했다. 금선은 이탑천을 잡았다. 그리고 나는, 그 한가운데에 있었던 탓에 건물이 무너지며 떨어진 철골에 폐가 뚫렸다. 사실, 이렇다 할 고통은 없었다. 애초부터 나는 전투만을 위해 만들어진 몸이었고, 그렇기에 웬만한 상처론 죽지도, 일정 기간 후 늙지도 않았고, 고통이나 이렇다 할 아픔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저 불편한 점이라곤 욱신거리는 심장의 한편과 움직이기가 힘들다는 점이었다. 먼지가 뿌옇게 일어난 후 눈에 보인 것은 열린 문으로 뛰어가는 금선과 오공이었다.

  아아, 그래. 성공했구나. 이제는 편하게 눈을 감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내 모든 것을 바쳐왔던 사람이, 무료했던 일상 속에서 살 의미를 찾았고 그것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렸으며, 그로 인해 태양같이 빛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 사람이 나를 돌아보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뭐라 불평할 수는 없었다. 태양은 하늘에 늘 떠 있지만 마치 하늘을 거부하듯 그 위치를 옮기며 자신의 몸을 숨길 수 있는 밤을 몰고 오니까. 하늘은 절대 태양을 잡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태양을 사랑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사라져가는 태양을 놓아주는 것도, 그를 사랑하는 방법의 하나였다. 게이트의 문이 닫힌다. 질긴 명줄의 이탑천이 문을 닫은 모양이었다. 다시 문을 열어야 했다. 이렇게 쓰러져 있을 수는 없었다. 몸을 일으키려 하자 입안에서 비릿한 피가 흘러나왔다. 철골이 꽤 깊게 들어간 모양이었다. 덜컥거리는 몸이 일어나선 안 된다는 듯 바닥에 몸을 고정했다. 오공이 내 쪽을 돌아보는 듯했다.

 

   “금선, 오공! 달려!! 절대 뒤돌아보지 말고! 가!”

 

  소리쳐 외쳤다. 입안에서 비릿한 맛이 느껴졌다. 죽어도 상관없었다. 저들을 저대로 게이트 밖으로, 하계로 보낼 수만 있다면 내 모든 목숨을 바쳐서라도, 이 자리에서 가장 고통스럽게 죽어간다 해도 괜찮다. 그러나, 세상은 늘 내 편이 아니었다. 빠르게 닫힌 게이트는 언제 열리기라도 했냐는 듯이 그사이에 금선을 사이에 끼고 있었고, 곧 금선의 목숨을 앗아가며 육중한 소리를 내고 닫혀 있었다. 어디선가, 비열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탑천이었다.

 

   “아, 하, 하, 하! 결국, 죽었구나! 이제 너 하나 남았어!! 이렇게 다친 몸으로 설마 곧 올 지원군을 상대하겠다는 건 아니겠지!”

 

   그 말과 같이 곧 천계의 지원군이 와 내 목과 손목에 쇠고랑을 채웠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는 느낌이었다. 금선이 죽었다고? 그동안 애써 무시하던 심장의 욱신거림이 커졌다. 분명 아픔이나, 고통은 모르고 있을 텐데, 그런데도 아팠다. 죽고 싶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는 느낌이었다. 무언가 툭 끊기는 느낌이 들었다. 만약 내가 없었다면 이 이야기는 달라졌을까? 요괴로부터 시작해 과학과 요술이 섞여 신성력을 얻어 신이 된 존재. ‘나타’도 나도, 사실은 없었어야 하는 존재였다. 그랬다면, 이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이었다. 아니, 사실은 그 ‘나타’조차 내 리뉴얼타입이니 나만 없었다면 되는 일이었다. 목에 들어온 천계군의 총구가 서늘했다. 아아, 즉결처분인가? 그것도 나쁘지 않지. 눈을 감았다. 지금 죽는다고 하면 권렴이나 천봉은 몰라도 방금 죽은 금선은 나를 기다려주고 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그런 그를 좋아했다. 그런 그의 모습과 행동을, 그 텅 비어있으면서도 태양처럼 빛나는 그 눈을 사랑했다. 그냥 그의 모든 것이 좋았다. 그렇기에 찬란하게 빛나는 이 태양이 떠나갈 때조차도, 나를 기다려주지 않을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그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것이겠지. 탕! 하고, 짧은 총성이 울렸다. 나는 죽은 모양이었다.

 

 

 

  눈을 떴을 땐 감옥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아주 작은 창틀 사이로 만년 벚꽃이 지고 있었다.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벚나무였는데.

 

   “너희조차 그들을 따라갈 수 있는데…….”

 

  심장이 쓰렸다. 폐에 난 구멍은 어찌어찌 막아놓은 건지 그저 흉터만 남긴 채로 그 모든 일을 설명하고 있었다. 꿈이었으면 좋으련만, 현실인 모양이었다. 심장의 고동이 뛰는 것이 싫었다. 이 왼쪽 가슴 속에서 요동치고 있는 삶의 증거가 미치도록 증오스러웠다. 자살이라도 할 생각으로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그 어떤 날카로운 것도 없었다. 웃음이 흘러나왔다. 빌어먹을! 왜 나는 그들과 같이 따라갈 수 없는 거지? 왜? 차라리 죽었으면 이렇게 아플 리도 없을 텐데! 왜!

  이제는 오공의 생사조차 알 수 없으니 금선과의 연결고리였던 작은 약속조차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 있잖아, 너는 나를 미워할 거야? 아니면, 그래도 수고했다며 열심히 했다고 칭찬해 줄 거야? 그 누구에게 던지는 건지도 모를 대답 없는 질문을 속으로 되뇌었다. 작은 창문으로 꽃잎을 떨구는 만년 벚꽃이 전부 다 질 때쯤, 나를 찾아온 병사가 내 수갑을 잡고 끌었다.

 

   “조심히 옮겨라. 부정한 자다.”

 

  부정한 자. 정확히는 재앙이 될만한 씨앗을 부르는 명칭이었다. 그런 자들은 나와 같은 금빛 눈동자를 띄고 있었다. 아니, 완벽한 재앙의 씨앗인 오공보다는 탁한 색이었으니 나는 호박색일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머리와 무거운 몸을 비틀거리며 끌려간 곳에선 이 모든 일을 지켜보고 있던 관세음과 새로 즉위한 듯 그동안 보지 못했던 얼굴의 천제가 있었다.

 

   “본래는 즉결처분해야 하나 관세음보살님의 선처로 너를 영원히 하계에 봉인한다.”

 

  그냥 죽으라는 거 아닌가? 갑작스러운 처분에 의아한 표정으로 관세음을 바라봤으나 그는 가만히 나를 내려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래도 그거면 충분했다. 영원히 잠이라도 잘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죽을 수 없다면 꿈에서라도.

 

  그렇게 몇백 년이 지났는지도 모를 시간이 지났다. 봉인되어 잠이 들었음에도 수백 년의 세월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어제 일처럼 생생했던 일들은 과거가 되었고 시간이 지나갈수록 흐릿해져 이제는 자세히 기억할 수 없었다.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무뎌진다.’ 천봉이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그 말처럼, 나는 무뎌진 모양이었다. 더는 그들의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을 때쯤 내 잠은 나를 깨운 누군가에 의해 깨지고 말았다. 옥면. 내가 몇백 년 전에 나타와 함께 봉인한 우마왕을 소생시키기 위해 자신의 심복들을 찾아다니는 중이었던 자였다. 물론 거절했다. 나는 죽었고, 또 여전히 죽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을 다시금 봉인하는 법을 몰랐다. 아니, 쓸 수 있다 하더라도 천계에서 입은 상처 때문에 힘의 흐름이 완벽히 뒤틀려버린 나는 다시는 신성력도, 요력도 쓸 수 없었다. 몸 안에서 꼬이는 요력은 방출할 곳을 잃고 몸을 파괴해 갈 것이었다. 억지로 무리해서 꺼낼 수는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천계에 내 위치가 들켰다. 내 몸은 그렇게 만들어져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정처 없이 다시 몇백 년이 흘렀다. ‘난폭한 요괴가 화과산에 봉인되어 있다’라는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오공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내가 닿을 수 없음에 절규했다. 마지막 남은 약속마저 지키지 못했다. 아마도 이제 영원히 지키지 못할 것이었다. 천계의 봉인은 나조차 깰 수 없는 봉인이었다. 더구나 「제천대성」을 봉인할 정도면 나에게 방법은 없었다. 휘청휘청 걸어가던 내 눈에 절 하나가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하계에선 신이 세상을 창조할 때 만든 천지개원경문을 5개로 나눠 그것을 수호할 사람을 길러 대대로 전수하고 있었던가. 법력이라도 쓸 수 있다면 적어도 다시 나를 봉인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안고 그 절 안으로 들어갔다. 절 안이었으니 내가 요력을 써 위치가 들통나게 된다고 하더라도 천계가 그렇게까지 신경 쓸 만한 곳은 아니었다. 그렇게 그곳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났다.

 

   “그래서, 뭐라고요?”

   “너 지금까지 내 말 안 들었지.”

   “그러니까, ‘수아가 사실은 저 높은 곳에 있던 투신이었다.’까지 들었는데요.”

   “거의 초반부터 안 들었잖아!”

 

  눈앞에 있는 실눈을 뜬 사내를 바라봤다. 달빛처럼 빛나는 그 사내는 죽어가던 내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었다. ‘순수한 아이’라는 뜻을 가진, 지금의 나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 드는 그 이름은 곧 내 이름이 되었다. 이상했다. 이렇게까지 나에게 잘해줄 이유가 있나. 그런 질문을 띤 표정으로 그를 바라볼 때마다 그 사내는 웃기만 했다. 마치, 미래를 바라보는 것처럼. 곧 천지개원경문 중 두 개를 가지게 된 그 사내는 시간이 지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빛처럼, 광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그의 행보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게 되었다. 그가 데려온 강류라는 어린아이도, 그가 그 아이에게 내리는 가르침도, 마치 내게 하는 말 같아서, 나는 다시 새 삶을 얻은 것 같았다. 부정하지 않겠다. 아주 잠깐, 몇백 년 전의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 사내 역시 자신의 제자를 지키고 그 목숨을 잃게 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울었던 것 같다. 나 홀로 사랑하던 사람이라지만 사랑하던 그 사람이 죽었을 때조차 흐르지 않았던 눈물이 흘렀다. 이상했다. 심장이 욱신거리다 못해 쿡쿡 찔리는 기분이었다. 원래 이런 감정인 건가. 사람은 자라며 모든 걸 배운다고 하지만 이런 감정을 다시 느끼고 싶진 않았다. 나는 나 자신을 스스로 봉인했다. 법력을 쓰니 아주 편하게 봉인할 수 있었다. 다시 누군가의 죽음을 내 눈으로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도 잠들어 있는 동안 들리는 목소리에 세상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의 과거, 누군가의 감정, 누군가의 세상까지. 그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렇게 세상을 알아가며 몇십 년이 지났다. 나를 다시금 깨우러 온 것은 천계의 명령을 받고 나를 깨우러 온 예언자, 타르체였다.

 

   “하늘은 모든 것을 봐야 합니다.”

   “그래서 나를 깨운 거냐.”

   “다시 해가 뜰 시간이 되었으니까요. 삼불신이 부르십니다.”

 

  내가 타르체의 말을 듣고 간, 장안에선 이미 삼불신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텔레비전의 화면과도 같이 맑게 흐르는 폭포수 사이로 얼굴을 비추는 그들은 나를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짧은 인사와 함께 그들이 전한 내용은 상당히 뻔한 내용이었다. 태양이 지는 서쪽에서 일어나는 우마왕 소생실험을 저지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더불어, 내가 포기하고 있었던 오공이 화과산에서 풀려났다는 것과 관세음의 능력으로 기억을 잃었다는 것까지 알려주고 있었다. 애초에 누군가의 뜻에 따라 용병처럼 살 생각도 없었고, 어디로 떠날 마음도 없이 그저 자고 싶었던 나는, 당연히 거절의 뜻을 내비치며 가운뎃손가락을 올렸다.

 

   “― 그래서 다시 몇백 년 전처럼 우마왕의 소생실험을 저지하러 가야 한다고? 내가 왜. 미쳤냐?”

   “현장 삼장법사, 삼불신의 부름에 지금 도착했습니다.”

 

  갑자기 들린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금선을 닮은 눈동자와 금선을 닮은 머리. 그러나 그보다는 좀 더 단단해진 그의 영혼을 가진 사내가 ‘현장 삼장법사’라는 이름으로 내 앞에서 ‘미친 건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서 있었다. 이 사내를 따라가면 무언가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문득 들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남아있는 금선의 흔적을 쫓았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상식’ 따위는 통하지 않는 돌고 도는 세상이었다.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분명 금선은 죽었다. 그런데도 또 뭘 쫓겠다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몇백 년 전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것은 지금 나 하나뿐이었다. 그럼, 내가 잠들면 그 이야기는 어떻게 되는 거지?

 

   “갈게. 서쪽으로. 그럼 되는 거지?”

 

  갑작스러운 내 태도의 변화에 삼불신의 표정에 당황이 묻어나왔다. 그러나 그들의 그 표정은 금세 사라져 현장 삼장법사와 이야기를 나눴고 그 모든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는 현장 삼장법사를 따라 발을 옮겼다. 이야기는 간단했다. 우마왕 소생실험을 저지하라는, 내게 전한 말과 나에 대한 설명.

 

   “방해되면 죽일 테니 알아서 해.”

 

  현장 삼장법사는 그렇게 말했다. 어깨를 으쓱이며 간 곳엔 오공이 먼저 바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나를 처음 본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눈을 바라보는 것이 힘들었다. 다 알고 있으면서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고 싶었다. 그러나 할 수 없었다. 다시금 이어진 금선과의 약속을 이렇게 깨어버릴 순 없었다. 그들과 간단한 자기소개를 마친 후, 합류하는 ‘팔계’와 ‘오정’을 보며 이제는 잘 떠오르지도 않는 과거를 떠올렸다. 정말 ‘상식’이라는 것이 통하지 않는 것이 이 세상이었다.

 

  나는 이렇게 또 손에 올려진 것을 놓지 못하고, 다시 깨어져 버릴 모래시계를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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