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같은 맑은 오전이었다. 통근길의 혼잡함도 줄어들고, 저잣거리의 가게들도 영업 준비를 하느라 느긋한 기류만이 거리를 나돌고 있었다.
집무실에서는 새벽 일찍부터 오윤이 업무를 보고 있었다. 간간이 업무 보고를 하러 들어오고 나가기는 했으나 단지 그뿐으로, 그의 손에서 펜이 떨어지는 순간은 거의 없었다.
서류에 글을 쓰고, 직인을 찍으며 기계적으로 움직이기를 수 시간, 며칠 전 하계에서 귀환한 부대가 제출한 보고서에 직인을 찍는 것으로 오전의 업무를 끝마친 그는 얼핏 제 옆으로 길게 뻗어진 그림자에 창가를 쳐다보았다.
동쪽으로 난 창문은 이른 시간의 맑은 햇살을 항상 집무실 안으로 내비쳐주었다. 시끄러울 일도 없는 장소다 보니 지나가던 새들이 앉아 휴식을 취하기도 했으나, 지금 앉아있는 저 새는 그저 지나가는 새라고 하기엔 사람의 손을 타 잘 관리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창문을 열자, 경계심이 없는 것인지 자체적으로 판단을 내린 것인지 새는 푸른 빛을 띤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할 뿐 별다른 동작을 취하지도 않았다.
오윤은 새의 꽁지깃에 달린 시치미를 확인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천제성이라 적힌 쇠뿔 조각이 매달려 있었다. 천제성에서 관리하는 전서조였다. 그와 동시에 떠오르는 얼굴에 오윤은 멀거니 새를 바라보았다.
느슨하게 땋아내려 잔머리가 잔바람에 너울거리는 금발. 먹을 떨군 듯 새까맣게 빛나는 눈동자. 지병이 있어 혈색이 좋지 않아 옅은 빛으로 물든 입술로 조곤조곤 자신을 피력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말문이 막히곤 하였다.
“오윤.”
지금처럼. 생각하던 사람이 바로 지척에 나타나자, 지레 찔린 오윤은 전서조를 내려다보던 그 자세로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오윤.”
상대방은 부름을 못 들은 줄 알았는지 직전보다 소리를 높이며 창가로 가까이 다가왔다. 더 피할 곳도 없었던 오윤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기억하던 그 모습 그대로, 햇살에 부서질 듯 말간 얼굴이 그를 마주하고 있었다.
정영. 그의 이름을 부른 뒤, 창가에 앉아있는 새를 힐긋 쳐다본 오윤이 이어 말했다.
“이 새를 잡으러 오신 겁니까.”
가지런히 내려온 머리칼 사이로 전서조들이 둥지를 틀 듯 오목조목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귀소본능이 있는 새들이라고는 하나 밖에서 풀어놓고 키우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내뱉은 말이었다. 그 판단이 얼추 맞았는지, 정영은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전날 담당이 새장의 문을 안 잠그고 갔더라구요.”
“고생하시겠군요.”
“그렇게 많이 도망치지는 않았어요. 이제 거기 아이만 돌아오면 된답니다.”
제 죄를 알고 있는 것인지, 창가에 앉은 새가 구르륵거리며 반응을 하였다. 오윤이 새를 잡으려 손을 뻗자, 아까까지의 얌전한 모습과 다르게 부리로 손을 쪼아대며 손을 물리고는 저 혼자 포르르 날아가 버렸다.
“…죄송합니다. 일을 방해해버렸습니다.”
“아뇨, 괜찮아요. 안 그래도 저 아이가 제일 까다로워서 미루고 미루던 차였어요.”
새는 멀리 날아갔지만, 정영은 한 걸음 가까이 오윤이 있는 창가로 다가왔다. 햇살에 하얗게 부서지는 금발이 잘게 살랑거리며 물결을 만들었다.
“그리고 덕분에 기회도 생겼지요.”
“기회…?”
오윤의 바로 앞에 선 정영은 훌쩍 날아가 버린 새가 앉았었던 창가 끄트머리에 손을 기댔다. 오윤은 말의 뜻을 헤아리느라 그가 평소 대화하던 거리보다 가까이 다가온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코앞에 다가온 머리칼에 움찔 뒤로 물러나려던 그는, 불안하게 흔들리는 정영의 새까만 눈동자와 마주치자 발이 묶인 듯 그대로 멈춰버렸다.
“천제성 지하에 있는……,”
―파드득!!
정영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멀리 도망쳐버린 줄 알았던 새가 처음 나타났던 자리로 다시 돌아온 탓이었다. 제 몸보다 큰 날개를 퍼덕이며 오윤과 정영 사이의 창틀에 안착한 새가 구륵구륵 소리를 내며 그들을 번갈아 보았다.
“…이제 그만 돌아갈 시간인가 보네요.”
정영은 새를 조심스레 품에 안아 들었다. 직전까지 보였던 불안한 기색은 온데간데없이, 다시금 평소의 말간 눈동자가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별말이 아니었을 수도 있고, 자신이 잘못 알아본 걸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오윤은 마음이 못내 걸려, 정영을 불렀다.
정영.
“하실 말씀이 있었던 것 아닙니까?”
오윤의 물음에 정영의 눈이 천천히 깜빡거렸다. 이내 천천히 입매로 호를 그리며 나직하고 느린 어조로 되물었다.
“…그럼,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괜찮을까요?”
“말씀해주십시오.”
“천계군은 천제성 지하에 있는 이공게이트로 하계에 갈 수 있다고 들었어요.”
천제성 지하 최하층부에 있는 이공게이트. 천계군이 관리하고 있다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유만 있다면 다른 자들에 비해 권한을 가질 수는 있었다.
정영은 저를 쳐다보는 오윤의 발끝으로 시선을 내린 채 말을 이었다.
“하계의 가을이라는 계절에는 은행나무가 노랗게, 그러니까 제 머리색처럼 변한다고 나타가 그러더군요. 나중에 하계에 내려가신다면, 노랗게 물든 은행잎을 가져다주실 수 있을까요?”
나타가 항상 저와 닮았다고 하는데 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정영은 제 동생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갈 무렵부터 환해지는 얼굴을 가리지 못한 채 재잘거렸다. 그의 부탁은 진심일지 모르나 하려던 부탁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윤은 물끄러미 쳐다보던 눈길을 지우며 말을 이어받았다.
“다음 출진 때 시기가 맞으면 꼭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귀찮으실 테지만 부탁드려요.”
“그리고,”
끝나지 않은 말꼬리에 정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윤은 잠시 말을 고르는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정영의 어깨에 앉아있던 전서조가 제 관리인을 따라 고개를 기울이는 것에 부러 눈길을 주며 오윤의 입이 다시금 열렸다.
“정영을 닮은 것이라면, 저는 황창포쪽이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황창포…, 꽃 말씀이신가요?”
오윤이 머쓱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정영이 눈꼬리를 길게 접으며 함빡 미소를 지었다.
“항상 물가를 지나가면 보이는 꽃이잖아요. 황창포를, 그러니까 지금 그 꽃을 당신이 볼 때마다 저를 생각한다고 오해해도 되는 건가요?”
“…….”
대답이 없음에도 정영의 미소는 더욱 깊어져 갔다. 발그레하게 물든 볼을 손등으로 가볍게 훔친 그가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로 말했다.
“나타가 당신과 제 사이를 무척 의심하고 있어요. 아직 저희는 무언가를 나누는 사이가 아니라고 했는데도 계속 캐묻더라구요.”
“그건,”
“오윤, 다음에 만나게 되면 황창포를 저에게 선물해주세요.”
나타한테 자랑할래요. 오윤은 즐거워 보이는 정영의 얼굴에 평소처럼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부탁은 한 가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 나서야 겨우 입을 떼기는 했으나, 어린애 같은 불평으로 들려왔다. 그럼 안 해주실 거예요? 정영의 웃음기 어린 물음에 오윤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아닙니다.”
하고, 다만 말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