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Elsword 세계관의 if 결말입니다. (원작 게임 스토리는 아직 진행중입니다.)
희생 없이는 대의를 이루기 어렵다. 수백 년 전 엘의 여인과 수백 년 후 어느 소년이 선택했던 것처럼, 여신께서 물질계를 사랑하여 직접 내려준 엘과 그 거룩한 권능을 원래대로 수복하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희생을 줄이고 모두가 공존하는 방법을 찾겠다며 나아갔다. 어렵고 힘든 길이라고 해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닿을 수 있다고 하던가. 창조신 엘리아와 여신 이스마엘께서 반드시 보답을 해주실 것이라고, 그리 믿었다. 그 끝에 우리의 이별이 있다고 해도, 그와 자신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여정의 끝에 그들은 단 한 명의 희생을 강요했던 세계를 모두가 함께 공존하며 지켜나가는 세계로 바꾸었다. 희생하는 자를 보며 안타까워하던 슬픔의 연쇄가 끊어졌으며, 서로 다른 종족들로 모인 탓에 각 종족의 대표가 되어 교류가 활발해졌다. 여신께서 바라셨던 물질계는 무릇 이런 모습이겠지. 혼돈의 힘을 부정하는 것 역시 아니었다, 창조가 있다면 소멸은 존재하는 법, 한때 여신의 의지를 받들었던 자가 혼돈을 이해하고 섭리를 깨달아 관장하는 군주가 되어 그것의 질서를 바로잡고 세웠다. 창조의 힘을 가진 하위신과 군주가 때때로 부딪힐 때도 있었지만, 창조와 소멸, 상반되는 성질과 본능적인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다가온 이별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온전히 복구된 엘의 탑 주변을 걸으며, 늘 나누던 대화를 전혀 할 수가 없었다. 손만큼은 꽉 쥐고 놓지 않은 채로, 다정한 시선 하나 나누지 못한 우리는 가장 좋아했던 장소에서 무엇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사라져야만 하는 그, 그리고 남아 있어야 하는 자신.
“저기 있죠, 신관님….”
그 침묵을 깨트린 것은 역시나 자신이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림짐작할 수도 없는 노릇에, 자신도 모르게 조금은 조급했을지도 모르지만 어떻게 해서든 전해야만 하는 말이 있었다. 나의 달, 나의 에브루헨. 그런 생각을 하며 마저 남은 손을 꼭 쥐고서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사랑해요.”
“예비 신녀씨……. ……로즈.”
“지금 다 말할 수 없는, 내가 살아갈 모든 순간마다 당신을 사랑할게요. 잊지 않을게요, 잊지 않을래요…. 당신에게만 이렇게 아무런 보상 없이, 나보다 먼저 가버리다니. 이 정도 소원이라면, 창조신께서도, 여신님께서도 분명. 분명 이뤄주실 거예요. 가지 말라고는 하지 않을게요, 하지만……. 잊으라고 하지 말아주세요. 제발. 내가 숨을 내뱉을 마지막 순간에도, 당신을 기억하고 사랑할 수 있게 해줘요.”
그의 부드러운 손길이 제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이윽고 이마 위에 닿는 입술의 감촉에 눈을 감았다가 느리게 떴다. 상냥한 녹색의 사람, 그는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띤 채로 이윽고 착용하고 있던 머리끈을 풀어 제 손 위에 쥐여주었다.
“그 말, 잊지 말아요. 로즈, 네 운명이 다 해서 신의 곁으로 돌아오는 날 다시 만나요. 나도, 정말로 사랑해요. 고마웠어요. 잠시 작별이에요, 울지 말고 웃으면서 보내줘요.”
답을 할 틈도 없이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는 빛무리로 흩어졌다. 차마 울지도 못한 채로 머리카락 윗부분을 고정했던 장미 모양의 리본 핀에서 리본을 떼어내고 그가 쥐어준 장식을 달았다. 기억하고 살아간다면, 언젠가 그의 말대로 신의 곁으로 돌아갔을 때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당신과 내가 만났던 운명처럼,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