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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수호자 루트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반복되는 세계. 윤회의 모형정원 속에 갇힌 자는 무엇을 이루는가.

 

  공기를 가르는 소리, 어떤 한 생명이 꺼져가는 불씨를 붙잡으려 울부짖는 소리. 짙은 음성은 형태가 되어 시야를 방해하는 안개조차 어지럽힌다. 환력과 소음이 뒤엉켜 앞을 제대로 볼 수도 없는 상황에, 어느 새인가 찬란한 불빛이 환영을 걷는다.

  붉은 달이 그 기운을 온 하늘에 뻗치며 음산한 기색을 내리는 밤하늘 아래, 수호의 금빛 광휘가 그것에 대항하듯 길게 선을 긋는다. 한 순간 어둠이 걷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환한 반짝임. 새벽이 오기라도 한 듯 일시에 시야가 밝아진다. 그리고, 그 중심에 한 사람이 서 있다.

 

  밤의 수호자. 끝나지 않을 시간을 수호하는 자. 멸망의 상징과도 같은 어둠 앞에 길을 내리는 하나의 별빛. 세실이 이를 악물었다. 그래, 참으로 잘 어울리는 수식어다. 지금까지 대체 몇 번이나 이 광경을 봤던가.

  몇 번이나, 몇 번씩이나 이 결말을 막아보려 했지만 모든 것은 허사로 돌아갔다. 같은 결말을 계속 맴돌며, 모든 가능성을 검토하고, 모든 행동을 취했다. 내가 그 손을 놓지 않았으면, 처음부터 잡지 않았으면, 중앙청에 알리지 않았으면. 그러나 이 빌어먹을 운명이라는 것은 마치 그런 세실을 조롱하듯 그에게 수호자라는 이름을 내렸고, 때때로는 그조차 하지 못하게 사지로 내몰았다.

수 없이 많은 시간을 지나며 그에게도, 자신에게도 많은 것이 남았다. 이미 그도, 자신도 이 광경이 처음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또다시 같은 말을 할까. 또다시 수호라는 이름으로 너 자신을 버릴까. 어디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한 걸까.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으나 들어줄 사람조차 없었다. 신이 정말 있다면 제발 이 비참한 연쇄를 끊어주기를 바랐다. 신은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그의 말을 되새기면서도.

 

   “……미안, 셀리아.”

 

  그러나 기원은 늘 무의미하기에 기원이라는 이름을 가진다. 이루어진다면 그것이 기적이지, 기원일까. 상처가 가득한 몸이면서도 굳이 가벼운 걸음을 가장해 걸어오는 그를 본다. 다음에 벌어질 일은 잘 알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알고 있었다. 주어진 각본을 반복해 나가는 연극이다. 다른 종막을 바라지만 누구도 그 선택을 하지 못하는 자들의 안쓰러운 단막극이다. 그는 제 손을 잡을 것이고, 수호의 빛은 희생이라는 맥락을 얻을 것이고, 자신은 또 그런 그를 보내야겠지. 반복 속에 쌓이는 것은 체념밖에 없다. 무수한 가능성이 한 곳으로 수렴하는 것을 목격한 사람에게 남은 선택지란 하나다.

  순간, 거대한 압력이 밀어닥쳤다.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의 충격파에 세실이 날아가 가로등 아래에 처박혔다. 어마어마한 고통이 몸을 강타했으나 삭힐 시간조차 없었다. 황급히 고개를 들어 보니 그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이미 중상을 입은 몸에 충격이 심한 모양인지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다시 한 번 이를 악문다. 어째서 이래야 하는 걸까. 어째서. 운명이라는 것의 손아귀에서 우리는 놀아나야 하는 것인가.

 

  세실은 처음으로 억울함을 가졌다. 자신의 나약함을 저주했다. 모든 말이 후회가 되어 제게 돌아왔다. 내가 조금만 더 강했다면. 내가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내가 너의 원인이 되지 않았다면. 내가, 지휘사가 아니었다면. 너와 같이 전장에 설 수 있었다면. 이 이야기를 다른 길로 이끌 수 있었을까. 간신히 몸을 추스르는 그의 모습이 폐부를 찌른다.

 

   “……세츠.”

 

  인간에게 있어 최대의 동기는 언제나 부정적인 감정에서 출발한다. 한 번도 타오르지 않았던 의지에 불이 붙는다면 그것은 걷잡을 수 없는 화염으로 번진다. 순백의 도화지에 목적이라는 색채가 물든다. 공백에 퍼지는 색을 막을 수 있는 것이란 없다. 설령 신이라 해도, 인간의 지독한 마음을 꺾을 수는 없다. 그는 인간이다.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공허의 사람이었으나 끝내 인간인 것이다. 세실이 몸을 일으켜 세워 정면을 보고 섰다. 밤의 빛은 어느 때보다 형형하게 빛난다. 낮의 하늘, 그리고 밤의 하늘. 교차되는 색은 무엇을 말하는가.

  수십 번을, 수백 번을 반복한 이야기. 그 횟수만큼 죽음을 경험한 사람. 수호라는 이름의 희생을 반복한 이. 또다시 같은 결말을 앞에 둔 밤의 수호자를.

 

   “미안해. 그리고…….”

 

  별가루가 비산하듯 빛이 모여든다. 사이로 지휘사는 웃었다.

  이것이 ‘우리들’의 결말이겠지.

 

  청명한 하늘의 색이 금빛으로 물들면, 그에 화답하듯 아득한 곳에서부터 빛의 물결이 밤을 걷는다. 밤을 그려낸 자가 그에게 손을 뻗는다. 생사를 가르는 어둠의 풍경을 건넌다. 차가운 기운이 순백의 머리칼을 헤쳐내고, 잡은 손 위로 모래시계를 돌린다. 죽음으로 이어지는 세계를 뒤집는다.

 

  “다시 만나자. 어떤 모습으로라도.”

 

 

 *

 

 

  9시. 지휘사가 깊은 잠에서 깨어난다.

 

   “……기억 상실이요?”

 

  끝이란 늘 시작의 다른 이름이었기에.

  그들은, 그는, 자신의 결말로 다시 시작을 열었다.

 

 

  하늘 끝에 빛을 잃은 백색왜성.

  그것은, 인간이 신에게 행한 반역의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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